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테오도시우스 2세 (문단 편집) ==== 테오도시우스 성벽[anchor(테오도시우스 성벽)] ==== || [[파일:external/2.bp.blogspot.com/byzantine_constantinople_eng_jjy0501.png|width=100%]] || || 테오도시우스 성벽 건설 이후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 || 서로마와의 관계 개선과 동시에 안테미우스는 기존의 콘스탄티누스 성벽만으로는 거세지는 야만족의 침략으로부터 제국 수도 방비를 효과적으로 할 수 없다는 점을 인지하고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추가로 난공불락의 육지 성벽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아르카디우스의 정권 때부터 시작되어 테오도시우스 2세 치세 하에 건설이 마무리가 된 이 성벽은 바로 테오도시우스 성벽이다. 이 성벽 건설은 테오도시우스 법전과 함께 테오도시우스 2세의 최고의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 [[파일:external/ss.textcube.com/XSlSwfwJFA.jpg|width=100%]] || || [[파일:external/i.jjang0u.com/123686062234737.jpg|width=100%]] || || 테오도시우스 성벽 || || [[파일:external/2.bp.blogspot.com/AjL2WkgCQAAq7tI.jpg|width=100%]] || || 테오도시우스 성벽의 구조 || 테오도시우스 성벽은 3중 성벽으로 콘스탄티노폴리스 서쪽으로는 마르마라(프로폰티스) 해부터 골든 혼(콘스탄티노폴리스의 내항)까지 이어진 육중한 성벽으로, 이 성벽 건설의 결과 과거 [[콘스탄티누스 1세]] 때 건설한 성벽으로 방어할 수 없었던 넓어진 시가지[* 테오도시우스 성벽 내 시가지 면적은 약 15.5km^^2^^로 기존의 성벽 내 시가지 면적에 비해 2배 가까이 넓어졌다.]를 방어할 수 있게 되어 더욱 난공불락의 요새가 되었다. 구조를 살펴보면 테오도시우스 성벽은 해자를 갖추고 있는 성벽으로, 해자 뒤의 흉벽과 너비가 2미터 높이가 5미터인 내성벽, 너비 5미터 높이 12미터인 외성벽의 삼중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특히 내성벽과 외성벽에는 각각 96개씩의 망루가 설치되어 있어 적을 견제하기에 용이했다. 이 성벽은 콘스탄티노폴리스 전체를 감싸고 있었는데, 육로에 면한 6 km 정도만이 앞서 설명한 구조로 되어 있었고 해안가의 성벽은 보통의 단일구조로 되어 있었다. 이렇게 건설된 성벽 방위력은 매우 강력해서 동로마 제국이 약화되어 수도가 침략을 받았을 때조차 정공법으로 이 성벽을 넘어 수도를 점령할 수 있었던 군대는 14세기까지 아무도 없었다.[* 1453년의 오스만 제국군도 15만 명을 투입했지만, 성내의 1만 남짓한 군대를 상대로 50여 일 동안 고전해야 했다.][* 1261년에 [[니케아 제국]]군 8백 명이 테오도시오스 성벽을 넘어 도시를 점령한 일이 있다. 다만 이는 내부의 호응이 있는 가운데 밤중에 몰래 성벽을 넘은 것이라, 정공법으로 성벽을 넘었다고 하기는 조금 뭣하다.] 이 성벽은 그 유명한 [[훈족]]의 [[아틸라]]가 성벽만 보고서는 공략할 엄두를 내지 못한 채 퇴각하게 만들었고, 수도를 포위해 쳐들어온 아랍 군대를 모조리 토양의 양분으로 만드는 등 여러 위대한 업적을 쌓았다.[* 물론 희대의 사기템 [[그리스의 불]]의 도움도 컸다.] 그러나 영원히 적의 침입을 허락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이 성벽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오스만 제국|두 대륙에 걸친 신흥 강국]]의 새로운 수도로 삼고자 했던 [[메흐메트 2세|21살의 젊은 술탄]]의 야심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고[* 사실 메흐메트 2세라고 해서 결코 쉽게 함락시킨 것이 아니었다. 상기했듯이 비록 극한까지 내몰리기는 했지만 로마군은 오스만군을 치열하게 막아내는 중이었고 오스만 궁정의 실세들은 콘스탄티노플의 점령을 통한 술탄의 지배권 강화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사건건 철군을 요구하는 상황이었다. 하물며 서방의 지원군 당도 역시 중요한 변수였기 때문에 메흐메트로서는 '천운 + 지속된 공격으로 인한 방어측의 피로 누적'이라는 아슬아슬한 승부수를 운좋게 잡은 셈이다.], 결국 콘스탄티노폴리스도 함락, 2천 년 역사의 로마 제국은 멸망에 이르고 만다. 다만 이 오스만 투르크의 공격조차도 정공법으로 성벽을 완벽하게 넘은 것은 아니었다. 수비대장의 부상으로 병력의 통제가 무너진 상황에서 성문을 열고 닫는 과정에 미스가 있었는데 그걸 집요하게 파고든 결과였다. 즉 마지막 순간까지 정면 돌파 및 수비군 궤멸을 통한 성벽 함락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심지어 테오도시우스 성벽을 최초로 뚫은 것은 적의 공격이 아니라 '''[[이스탄불]]의 [[지하철]]과 [[트램]] 공사'''였다고 말하는 곳도 있을 정도다. 현대의 테오도시우스 성벽은 이스탄불 시의 행정구역인 파티흐(Fatih) 구의 경계 역할을 한다. 이 파티흐 구는 옛 콘스탄티노폴리스 시가지 전체이다. 성벽의 대부분이 남아 있으나 앞서 말한 지하철과 도로가 일부 성벽을 관통한다. 대한민국 전쟁사학자 [[임용한]] 박사는 [[허준(게임 캐스터)|허준]]의 유튜브 채널에서 '만약 [[칭기즈 칸]]이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했다면?' 컨텐츠에서 얘기가 나오자마자 "절대 함락 못시킨다. 역사적으로 못시켰어" 라고 단언할 정도였다. [[https://youtu.be/NBbWz_dTcHU|#]]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